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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톤 채홉 - 귀여운 여인(1)/ 효석 최택만

봉은 2020. 1. 7. 16:35



안톤 체홉_귀여운 여인


올렌까(올리가의 애칭)는 퇴직한 팔등관 쁘레만니꼬프의 딸이다. 지금 올렌까는 자기 집 정원으로 내려가는 조그마한 계단에 앉아 무언가 생각에 잠겨 있었다. 날씨가 덥고, 파리가 성가시게 달라붙었다. 그러나 이제 곧 저녁이 온다고 생각하면 무척 기뻤다. 동쪽에서 검은 비구름이 몰려오고 이따금 습기찬 바람도 불어왔다.

안뜰 한가운데에는 '띠보리 유원지(로마 근교에 있는 명승지의 이름을 딴 것)'의 지배인인 꾸낀이라는 남자가 서서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꾸낀은 올렌까 집의 별채를 세를 얻어 살고 있었다.

"빌어먹을, 또야?" 그는 내뱉듯이 말했다. "또 비가 올 모양이군! 매일매일 하루라도 비가 오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는 모양이군. 마치 일부러 그러는 것 같아! 이래서야 차라리 목이라도 매서 죽으라고 하지 그래! 파산하라는 얘기나 똑같아! 매일 엄청난 손해를 보고 있으니 말이야!"

그는 두 손을 탁 치더니 올렌까를 향해 말을 이었다.

"바로 이런 겁니다, 올리가 쎄묘노브나. 우리가 살아간다는 게 말입니다. 정말 울고 싶은 심정입니다! 별 고생을 다하고 정성을 들이죠. 끙끙거리며 밤잠을 못 자면서 말입니다… 조금이라도 나은 것을 만들어 올리려고 온갖 머리를 다 짜내죠… 그런데 결과는 뭡니까? 무엇보다 우선 저 구경꾼들 말씀이죠… 저 사람들은 교육을 제대로 못 받은 야만인들이다, 이 말씀입니다.

이쪽은 온갖 정성을 다해서 고르고 골라 고상한 오페레타니, 무언극이니, 훌륭한 가수들이 부르는 가요곡이니, 준비를 다해서 보여주지만 과연 그들이 그걸 원할까요? 그 작자들한테 그걸 보여주면 그게 뭔지 알기나 하는 줄 아세요? 그 작자들이 정말 원하는 것은 그저 광대를 요구할 뿐입니다. 저속한 유랑극단의 신파극 말이죠! 그리고 또 이 날씨 좀 보세요. 밤에는 반드시 비가 내리죠.

오월 십일부터 비가 오기 시작하더니 오월과 유월 내내 비가 내리다니 정말 이렇게 기가 막히는 일이 어디 있겠어요! 구경꾼은 얼씬도 하지 않는데 나는 장소 사용료를 꼬박꼬박 물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배우들에게 주는 급료도 빼먹을 수 없지요!"

다음날도 저녁 무렵에 또 비구름이 몰려왔다. 꾸낀은 신경질적으로 웃으며 말했다.

"그래, 어쩌겠다는 거야? 쏟아지려거든 맘대로 쏟아지려무나! 차라리 극장을 아예 물바다로 만들어 버려라! 차라리 나를 물 속에 집어 넣어다오! 이 세상의 내 행복, 아니 저 세상의 행복 따위도 어떻게 되건 알게 뭐람! 배우들이 고소하려면 고소하라지! 법원 따위가 뭐 말라 비틀어진 수작이야? 시베리아로 유형을 보내도 난 상관없어! 단두대도 두렵지 않아! 하하하!"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