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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인의 생활(10)

봉은 2020. 3. 15. 07:11

나의 필화(筆禍) 사건

 

청와대 통신계장 사건 기사가 나가자 청와대가 발깍 뒤집혔다. 청와대에서 조선일보에 전화를 걸어 사건의 진위를 확인하자 서울신문에 난 것을 확인해 보니까 다 맞아서 보도했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청와대는 서울신문에 전화를 그 기사를 쓴 기자가 누군지 알아낸 뒤 즉시 나에게 전화를 했다. 오늘 오전 중으로 청와대 경호실로 출두하라는 것이다. 나는 사건담당테스크에게 청와대에 출두한다고 말하고 청와대로 갔다.

 

경호실 경찰관의 안내로 어느 방으로 갔다. 조금있다가 조사관인 듯한 사람이 들어와 다짜고짜로 그 기사가 비밀영장인데 어디서 어떻게 취재했는지 말하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의 신상에 좋지 않은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협박했다.

 

그 협박은 너를 비밀누설 협의로 잡아넣갰다는 것과 서울신문에 나늘 해고토록 명령하겠다는 두가지 의미가 담겨 있는 것 같았다. 그 당시 서울신문은 정부가 출자한 국영기업이어서 사장이 정부의 지시를 받게 되어있었다. 청와대 경호실

장이 서욼신문이 대 비리를 기사로 쓸 수 있느냐는 잘못된 생각을 갖고 있었았다.

 

내가 입을 열면 법원 영장계 최모씨 등 몇명의 공무원이 파면될 것 같았다. 이는 기자는 취재원을 보호해야 한다는 기자 윤리에 배치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서울신문에서 해고되거나 감옥에 간다해도 취재원을 보호해야 한다고 결심했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니 조사관이 아무리 협박해도 나는 "취재원을 밝힐 수 없다"고 되풀이 했다. 당신이 입을 열지 않으면 사회부장과 편집국장이 청와대로 불려 와  조사를 받게된다고 했다. 실제로 사회부장을 불러 조사를 받았다. 국장까지 불러 "서울신문이 그런 기사를 낼 수 있느냐"고 욱박을 했다는 것이다.

 

국장까지 소환되니 우리신문 사장이 가만히 있을 수는 없게 되었다. 우리 회사 사장은 5.16 혁명공약을 인쇄한 사람으로 혁명에 참여한 유일한 민간인이다. 다음 날 안 것이지만 우리 사장이 박종규 당시 경호실장을 만나 "그 사건을 없었던 것"으로 합의를 보았다는 것이다.

 

조사관이 "당신 운 좋다. 나가라"고 해서 밥늦게 신문사에 오니 편집국 기자가 전이 퇴근하지 않고 있었다. 기자의 의리가 얼마나 깊은지 실감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