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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라우닝 부부의 애틋한 사랑/효석 최택만

봉은 2020. 7. 23. 17:48

당신이 날 사랑해야 한다면

-엘리자벳 배릿 브라우닝-

 

당신이 날 사랑해야 한다면,

오직 사랑을 위해서만 사랑해주셔요,

 

그리고 부디 미소 때문에,

미모 때문에,

부드러운 말씨 때문에

그리고 또 내 생각과 잘 어울리는 재치있는 생각 때문에

그래서 그런 날엔 나에게 느긋한 즐거움을 주었기 때문에

저 여인을 사랑한다고는 정말이지 말하지 마셔요.

 

 

사랑하는 이여 !

이런 것들은 그 자체로나

당신 마음에 들기 위해 변할 수 있는 것

그리고 그렇게 얻은 사랑은 그렇게 잃을 수도 있는 법

 

 

내 뺨에 흐르는 눈물

닦아주고 싶은 연민 때문에 사랑하지도 말아주세요

당신의 위안을 오래 받으면 눈물을 잊어버리고

그러면 당신 마음도 떠나갈 테죠.

오직 사랑만을 위해 날 사랑해 주셔요.

 

사랑의 영원함으로 당신 사랑 오래오래 지니도록

 

이 시는 영문학에서 가장 유명한 사랑이야기로 꼽히는 로버트 브라우닝(Robert Browning, 1812-1889)과 엘리자벳 배릿 브라우닝(Elizabeth Barret Browning, 1806-1961)의 열애의 기록이다. 마흔 살의 노처녀이자 장애인이었던 엘리자베스 배릿이 당시에는 무명시인이었던 여섯 살 연하의 로버트 브라우닝의 끈질진 구애를 받아들이면서 쓴 연시(戀詩)이다.

 

지금은 남편인 로버트 브라우닝의 명성에 가려졌지만 당시에는 그녀가 남편 보다 훤씬 유명하였고, 워즈워드의 뒤를 이을 계관시인의 후보로 꼽힐 정도였다.

 

유복한 가정에서 아름답고 전원적인 환경에서 자라 시재(詩才)를 마음껏 발휘할 수 있었던 배릿의 소녀시절은 행복하였다. 그러나 15세 때 말에 안장을 얹다가 척추를 다치고, 다시 몇 년 후 가슴의 동맥이 터져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는다.

 

1845년 로버트 브라우닝은 다음과 같은 편지를 쓴다. "배릿양, 당신의 시를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합니다. 당신의 시는 내 속으로 들어와 나의 한 부분이 되었습니다. 온 마음 다해 그 시들을 사랑하고, 그리고 당신도 사랑합니다"

 

그해 봄 그는 그녀를 방문하고, 그후 그들이 결혼할 때까지 2년 동안 나눈 연서만 두꺼운 책 두권에 달한다. 그러나 그들의 사랑은 이미 딸의 죽음을 준비하고 있던 엘리자베스의 아버지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친다.

 

결국 두 연인은 브라우닝의 친구 한 명과 엘리자베스의 하녀만이 참석한 가운데 비밀결혼식을 올리고 엘리자베스의 건강을 위해 기후가 따뜻한 이탈리아로 떠난다.

 

그곳에서 브라우닝 부부는 활발한 작품활동을 하였으며 사랑하는 힘은 생명의 힘까지 북돋아 배릿은 네 번의 유산 끝에 1849년 아들을 순산하였고(아들은 나중에 조각가로 활동), 15년간 행복한 결혼생활 끝에 1861년 6월 29일 남편이 지켜보는 가운데 눈을 감는다.

 

다음에 소개할 시 "당신을 어떻게 사랑하느냐구요?"는 엘리자베스 배릿 브라우닝이 ‘한평생 숨결과 미소와 눈물로’ 온전히 사랑한 남편에게 바친 연애시다. 병석에 누워 지내는 자신을 그토록 사랑해 준 남편을 통해 ‘잃은 줄만 여겼던’ 열정을 되찾고 한없이 큰 사랑속에서 삶을 마감한 그녀의 생애를 생각하면 이 시는 더욱 애틋하다.

 

당신을 어떻게 사랑하느냐구요?

엘리자베스 배릿 브라우닝

당신을 어떻게 사랑하느냐구요? 헤아려 보죠

비록 그 빛 안 보여도 존재의 끝과

영원한 영광에 내 영혼 이를 수 있는

그 도달할 수 있는 곳까지

 

태양 밑에서나 또는 촛불 아래서나,

나날의 얇은 경계까지도 사랑합니다

권리를 주장하듯 자유롭게 당신을 사랑합니다

칭찬에서 돌아서듯 순수하게 당신을 사랑합니다

 

옛 슬픔에 쏟았던 정열로써 사랑하고

내 어릴 적 믿음으로 사랑합니다

세상 떠난 성인들과 더불어 사랑하고,

잃은 줄만 여겼던 사랑으로써 당신을 사랑합니다

나의 한평생 숨결과 미소와 눈물로써 당신을 사랑합니다

신의 부름 받더라도 죽어서 더욱 사랑하리다.

 

추고 : 대학 때 국립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에리자벳 베닝 브라우닝 시를 읽고 감동해서 암기했던 것이 불현 듯 떠 올라 어제 밤 다시 읽어 보았습니다. 사랑의 힘은 위대하다고. 사랑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지 세계의 모든 사람들에게 보여 주고 있는 시입니다.

 

2020년 7월 21일

최택만 전 서울신문 논설고문, 전 교수신문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