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레길/효석
요즘 걷기운동이 붐이다. 걷기 열풍엔 길이 한 몫 했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이 일종의 경건한 의식처럼 유행으로 번지자 국내 에서도 처음으로 제주도의 올레길이 생기더니 각 지역마다 멋진 길들이 경쟁하듯 열리기 시작했다. 지리산 둘레길, 도봉산 둘레길 등 많은 둘레길이 사람들의 발길을 유혹한다.
오늘도 또 그 둘레길을 걸었다. 걸어도 걸어도 더 다감해지는 그 길. 카펫이 깔린 듯한 길. 혼자 걸어도 둘이 걸어도 변함없이 반겨주는 그길은 나를 매료시킨다. 물론 좋은 사람과 청명한 숲속 공기를 마시며, 땀도 흘리면서 내딛는 둘레길 의 발걸음은 흡사 하늘을 나르는 것 같기도 하다.
오늘은 둘레길 의미를 되세겨 보았다. 말 그대로 <둘러보는 길>일 게다. 둘러본다는 것은 길의 경계를 넘지 않고 그저 조금 가까이서 나무와 숲, 그리고 새의 모습을 잠시 구경하는 것일 게다. 꽃이 피고 물이 흐르고 낙엽이 물들고 눈에 덮인 자연의 삶을 살펴보는 길일 게다. 전주 산행에서 새들이 잠을 깨지 않게 조용 조용 걸어야한다는 한 친구의 아름다운 말처럼 산행하는 모든 사람들이 자연을 사랑하고 아낀다면 얼마나 좋을까?.
둘레길은 자신을 <돌아보는 길>일 게다. 길에서 우리는 인생을 배운다. 한발 한발 걸으며 자신의 삶을 추슬러 보는 일은 치열한 삶 속에서 꼭 필요한 지혜다. 살아온 발자국들을 돌아보는 것은 앞으로 살아가야 할 발길을 가늠해 보는 중요한 기술이기 때문이다. 자신을 돌아보려면 조용함이 필요하다. 그래서 걷는 동안 넘 큰소리로 대화를 나누거나 듣고 싶지 않은 라디오 소리를 크게 트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둘레길은 <나눠보는 길>이다. 길은 늘 낮선 사람들을 만나게 한다. 그저 잠깐 스쳐가는 사람이지만 사실 그 사람은 꽃보다 귀한 존재다. 같은 길에서 만난다는 것은 보통 귀한 인연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둘레길 만남의 모습은 마치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원수들>같다. 좁은 길에서는 서로 길을 양보 하지 않으려 하고 스쳐지나가는 표정들은 소가 닭을 보듯 무심들 하다. 한마디 짧은 인사라도 했으면 오직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