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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지고(至高)의 사랑/ 효석

봉은 2020. 10. 11. 19:49

피천득 수필가님의 첫사랑인 일본 여인 아사꼬, 선생은 평생에 그 갈급한 여인을 겨우 세번 만나게 되는데 첫 만남은 선생이 열일곱살 나이로 일본 동경에 갔을 때 어느 지인의 집에 유숙하며 우연히 만난 그 지인의 딸이다.

이제 갓 10살을 넘긴 초등학생 아사꼬였으니, 소녀의 청순함이야 더 말할 나위 없다. 선생이 동경을 떠나던 날 소녀의 스스럼 없는 포옹과 선생의 뺨에 그녀의 입맞춤이 선생의 남은 평생을 뒤흔들 줄이야

그로부터 십 삼사년이 지나 선생이 다시 동경을 찾아가 대학 3년생의 아사꼬를 두번 째 만났을 땐 이미 무르익은 목련을

보게 되는데, 그녀와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를 논하며 문학 이야기로 꽃을 피우다 겨우 가벼운 악수만으로 서로를 떠나게 된다

그 후 또 십여 년이 지나 마지막 세번 째 만남을 갖게 되는 데, 선생은 그때 만나지 말았어야 했다고 술회하시고 만다. 세월을 못이겨 시들어가는 백합꽃을 보았기 때문이다.

결혼한 아사꼬와의 세번 째 만남은 그렇게 손 한번 잡아보지 못한 채 그저 서로가 서먹서먹 절 몇번 나누며 헤어졌지만,

순간 선생의 귓전엔 그 옛날 아사꼬가 속삭이던 그 말이 스쳐 지나갔단다.

"아저씨, 우리 이 다음에 이 동화책에 나오는 뾰족 지붕 집에 함께 같이 살아요"

이 내용은, 바로 고 피천득 선생의 수필, "인연"에 나오는 내용들이다. 인연이란 그렇게 짧지만 한 문학인에게 길고도 긴 사랑의 대장정 같은 역사이었다

고인의 팔십 평생에 단 세번의 만남이었지만 평생을 함께 한 진정한 사랑의 대서사시가 아닌가. 마지막 숨을 거두시는 선생의 마지막 유언같은 한마디도 바로 그의 첫사랑 아사꼬 였다고 하니, 가히 한사람의 진정한 예술가에 있어서 사랑의 울림이란 그야말로 영원하다 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다음은 선생의 수필 가운데 마지막 구절인데, 그야말로 명작으로서의 대미를 장식하고 있기에 더불어 인용해 본다.

"그리워하는데도 한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아사꼬와 나는 세번 만났다. 세번 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무상한 세월 앞에 첫사랑을 향한 노년의 이 얼마나 간절한 역설의 그리움인가!

피천득 님의 수필 "인연"을 읽으면 사랑의 진정한 가치를 깨닫게 된다. 팔십 평생을 통하며 이 여름보다 더 뜨거운, 그러면서도 영원히 식지 않은 사랑이 거기에 있다. 절대 지고(至高)의 사랑이....

 

최택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