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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기행/박화성...고향없는 사람들

봉은 2019. 8. 7. 17:53

불암리라는 작은 마을에, "여보소 이 사람 어디를 가나/ 산 높고 물 깊어 길 험하다네/ 강서가 예서로 일천 오백 리/ 나는 새라도 사흘 간다네."라는 구슬픈 삶의 애환이 서린 노래가 퍼지게 된다.


그것은 오삼룡이네 외에 아홉 가족이나 평남 강서 농장으로 이민해 가게 된 뒤로 누구의 입에서인지 흘러나온 것이다. 지난해의 홍수 때문에 농사라고는 쌀알 몇 입밖에 건져 보지 못한 각 면, 각 마을의 일백 호나 되는 가족들이 일제히 강서로 떠나게 되기까지 마을 사람들의 심금을 찡하게 울렸다.

그 동안 마을 사람들은 몇 번씩이나 면사무소에 불려 가고 면사무소에서도 자주 조사를 나와 이민을 독촉하였다. 그리하여 동네의 전별 잔치가 있던 날, 판옥은 "모레가 되면 우리 동리에서는 열 집 가족 사십 명이 산채로 죽어서 나가는 날이오. 허허 죽는 것이나 무엇이 다르오? 허…." 하며 울음을 터뜨렸다.

이렇게 삶의 터전을 잃고 강제로 고향을 떠나게 되는 설움에 빠져 있을 때, 판옥에게 먼저 이민간 덕근 아배에게서 이민의 참상을 담은 편지가 온다. 그 내용은 강서 농장으로 옮겨온 이민자들은 전부 고향에 귀환시켜 달라는 진정서를 총독부에 보내고 날마다 회사에 가서 속히 고향에 가게 해 달라고 졸라댄다는 내용이었다.

이주민들은 필사적으로 귀향 조치를 요구한다. 이리하여 팔월 중순에 이주민들은 꿈에도 그리던 그들의 고향으로 다시 갈 날을 기다린다. 불암리에서 온 열 집 가족도 물론 귀향하기로 결심하고는 고향 이야기를 꽃피우며 기뻐한다.


그러나 고향으로 떠나기로 작정한 사흘 전날, 오삼룡은 강판옥에게서 홍수와 흉년으로 굶어죽게 된 고향의 현실이 담긴 편지를 받는다. 편지를 읽는 삼룡의 입이 씰룩씰룩 이그러지고 손이 벌벌 떨리더니만 굵은 눈물 방울이 눈에서 떨어진다.


그는 편지를 다 읽고 나서 벌떡 일어나 회사에 다녀온 후, 다음과 같은 답장을 낸다.

"자네의 만리 장서를 받고 나는 그냥 회사로 쫓아가서 모레 떠나기로 한 귀향 신청을 중지하고 말았네.


고행과 나라를 잃은 사람들의 슬픔을 보면서 민족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연방제 통일을 바라는 사람들의 주장을 생각해 본다. 대한민국은 민주국가고 북한은 공산국가다. 나라가 다르다. 자유도 인권도 없는 나라와 통일해서 어쩌자는 것인가? 나라가 잃은 사람들이 되겠다는 것인가?


2019년 8월

최택만 교수신문 주필,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