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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기행 이병주/바람과 구름과 비

봉은 2019. 8. 25. 14:08

이병주의 10권으로 되어 있는 대하소설 <바람과 구름과 비>는 흥미 위주의 소설이다. 3권까지는 워낙 흥미가 있어 언제 읽은지 모를 정도다.

하지만 중반으로 가서는 조금씩 밀도가 약해지고, 후반으로 가서는 흥미를 상실한다. 하긴 대하소설은 후반부로 갈수록 작품의 밀도가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병주의 <지리산>도 그랬고, 조정래의 <태백산맥>도 그랬고, 박경리의 <토지>도 그랬다).

대원군이 야심을 품고 은인자중하던 조선조 말엽. 최천중이라는 관상가가 등장한다. 관상가로서의 능력은 물론, 웬만한 양반 뺨 칠 정도의 학식을 갖췄고, 언변도 청산유수다.


옵션으로 뭇 여인네를 황홀하게 만드는 기막힌 방중술(房中術)도 가졌다. 최천중 앞에는 돈이 쌓이고, 숱한 여인네들이 줄을 선다.

그러나 최천중의 야심은 실로 창대해서 시시한 관상가로 만족하지 못한다. 자신의 재력과 신통력으로 인재를 끌어 모은다. 무술 잘하는 이, 학문 잘하는 이, 여자 잘 꼬시는 이, 심지어 거짓말 잘하는 이까지. 어떤 방면이든 재주만 있다면 자기 휘하로 포섭한다.


그리고 ‘삼전도장(三田渡莊)’이라는 곳을 총본산 삼아 이 난세에서 크게 일어서려 한다. 그러나 최천중은 심복이던 연공이 없어진 뒤에는 상황파악을 못하고 허둥지둥한다.


7권에 들어서면 최천중이 그토록 야심차게 추진하던 삼전도장이 붕괴되고 만다. 근근이 이어오던 이야기의 추진력이 여기서 급격하게 빠져 버린다.

이 작품 말미에 영세중립론을 주장하는 독일공사관 부영사 부들러가 나온다. 부블러(Hermann Budler)는 실존인물로, 1885년 3월 영세중립 정책을 조선 정부에 제언한 바 있다.


영세중립론은 작가 이병주와 인연이 깊다. 국제신보’주필이던 이병주는 1961년 한반도 영세중립국화를 주장한 논설을 쓴 뒤 구속된 적이 있다.

​2019년 8월 25일

최택만 전 교수신문 주필.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