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듣기만 해도 가슴이 뛴다. 사랑은 죽음처럼 강한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사랑을 주고 받는 편지, 러브레터는 최고의 보물이자 인생의 숭고한 절차 중 하나라고 한다. 이 러브레터의 상대는 나이가 들면서 연인에서 소중한 사람으로 바뀌는 야릇한 속성이 있다는 것이다
내가 러브레터를 처음 쓴 것은 고교 2년 때이다 학교를 갈 때면 거의 같은 시간에 반대 편에서 오는 한 여학생이 편지를 받은 주인공이다 편지 내용은 "그대를 사랑해요 그 이유를 말하라하면 가지수가 너무 많아 지구를 한 바뀌 돌고도 남을 거예요 그대에 대한 나의 사랑을 말이나 글로 표현하라 하면 그 말을 다하기도 전에 내 목은 쉬고 그 글을 다 쓰기도 전에 손가락이 곱고 말 거예요"라고 쓴 것으로 기억된다
나는 "사랑한다"고 쓰고 나면 머리가 꽉 막혀 더 이상 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이유를 다 말할수 없고 글로 쓸 수가 없다는 엉뚱한 핑게를 늘어 놓은 것이다 내가 그 학생에게 러브레터를 주었으나 답장이 없어 아침 등교 길에 길을 막고 대담하게 물었다 "왜 답장을 주지 않느냐"고...
그 학생의 대답은 냉정했다 "할 말도 없고 쓸 필요도 없서서 답장을 하지 않는다" 고 강한 어조로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리가 띵하면서 현기증이 일어났다 그래서 길을 비켜주고 말았다 속된 말로 한 방을 맞은 내가 곰곰이 생각해 낸 것은 매일 아침 학교가는 방향으로 가지 않고 오던 길을 되돌아 그 여학생 과 같이 걷는 것이다 그 다음 날 부터 실행에 들어 갔다
그 여학생은 "내일 답장을 주겠다"고 했다. 나는 뜬 눈으로 날을 지새고 잔득 기대를 갖고 아침에 집을 나섰다 설레이는 마음 한편에는 불안한 마음으로 발거름을 재촉했다 멀리서 그 학생이 보였다 그 때 부터 다리가 휘청 휘청 떨려 걸음을 걸을 수 가 없었다 그는 내 앞까지 와서 봉투를 건내 주고 휑하니 가벼렸다
나는 골목길로 비호같이 뛰어가 편지를 열어 보니 " 노(no)라는 글자만 한 페이지를 써 놓았다 딱지를 맞은 것이다 나는 사랑한다는 말을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시귈 수 없는 변명은 몇줄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고교 시절 러브레터는 이렇게 완전 KO로 막을 내렸다
러브레터를 가장 잛고 길게 쓴 사람은 프랑스 화가 마르셀 레쿠루르이다 1875년 레쿠루르는 애인인 마드렌 에게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흔해 빠진 말을 180만 5000번이나 되풀이해 쓴 것이었다. 이 숫자는 그해 의 연호에다 1000을 곱한 것이고 대서인이 쓴 것이다.
이 말을 180만 5000번 써달라고 부탁한 게 아니라 레쿠루르가 한마디씩 입으로 말한 것을 대서인이 그때그때 받아 적은 것이다 ( 숫자는 좀 과장 된 것 같으나 그렇게 알려지고 있다) 사랑의 속삭임이 이렇듯 많은 시간과 노력 끝에 고백된 일은 이제까지 한번도 없었다고 한다
지금 생각하니 그 학생은 레쿠루르와는 정반대의 글이자만 동일한 숫법으로 쓴 것이다 만약 내가 레쿠루르처럼 많은 시간과 노력을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이 한가지는 궁금하다 또 러브레터 상대를 연인에서 소중한 사람으로 바꿔 한 번 써 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것은 나이가 들어서 일까?
그 충동은 아마도 사랑이 삶의 가장 정갈하고 소롯한 정수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랑은 결코 그 자체가 완성되는 끝이 아니고 새롭고 더 큰 사랑을 향한 시작이며 출발점일 따름이다
효석 최택만 시인,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