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6,25 때 피난 간 외가마을 풍경과 친구들

봉은 2020. 2. 23. 18:51

어떻게 잊을 수 있는가?

 

기와지붕과 초가지붕이 다소곳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노인들과 아낙네들이 마들머리에 서 있는 느티나무나 논두렁가에는 서있는 미루나무 옆 정자에 앉아 한여름 더위를 식힌다.

 

6,.25 동란 때 피닌 갔던 나의 외갓집 마을 풍경이다.

 

마을의 집들은 대문이 할짝 열린 채 모두 비어있고, 새끼 낳은 암케들만 툇마밑을 지키고 있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수업이 끝난 텅빈 초등학교 교정에 매미 소리만 자지러지고, 소년들이 붓도랑에가서 반두와 종다래끼로 배가시리, 모래무지, 송사리 등을 잡는 모습을이 정겹다.

 

내 또래의 산골아이들은 학교에서 파하고 집으로 오면 책보자기를 톳마루에 내던지고 외양간으로 가서 소를 몰고 꼴을 먹이러 나간다. 집으로 돌아가서 아버에게 질책을 당하지 않으려면 소가 풀을 뜯고 있는 동안 부지런히 꼴을 베어 태기를 채워나가야 한다. 그러면서 소가 고삐를 끊고 콩밭이나 개울로 들어가않도록 닦달해야 한다.

 

틈틈이 미루나무 아래에 웅크리고 앉아 선생님이 내주신 산수 숙제를 몽당연필로 끍적거려야 한다. 열 손가락을 오므렸다 폈다 하며 셈을 해보지만 숙제에 매때마다 진전이 앖다.

 

그러나 산골 아이들은 늦여름 오후의 노을을 보며, 하늘의 달무리를 보며, 참외까지 범람한 홍수를 보며, 아름드리 고목을 단박에 찢어놓았던 번갯불과 천둥 소리를 들으며 인생의 감성과 체험을 배워간다.

 

피난 시절에 보았던 외갓집 마을의 풍경과 친구들이 가끔 생각나는 것은 나이 탓일까.? 이 한편의 동양화를 그리면서 오늘 밤을 맞을 수 있는 것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를 드린다.

 

효석 최택만 전 서울신문 논설고문, 교수신문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