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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인 생활(11)/최택만

봉은 2020. 3. 15. 07:17

한 처녀의 석방

 

검찰과 법원 출입기자 생활 3년여가 지나면서 매일 사건기사만 찾고 다니는 일이 싫증이 나기시작했다. 훈훈한 정이 오가는 뉴스나, 주말 화제가 될만한 기사를 쓰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검사의 책상에 있는 두툼한 봉투와 X레이사진을 넣은 봉투가 눈에 띄었다. "저게 무얼까?" 검사한테 저 서류를 잠간 보고 싶다고 말하고 덮석 들어서 읽기시작했다. 재헌의회 김동원 부의장 부인이 검사 앞으로 보낸 진정서였다

 

김부의장은 평양 YMCA 회장을 역임했고 상공업에도 투자하여 번 돈을 숭실전문학교 등 교육계 운영에 투자한 인사이다. 이광수씨와 함께 수양(修養)동우회를 총괄하기도 했다. 또 작가 김동인씨형이다.

 

김부의장 부인이 검사에게 보낸 진정서는 이랬다. 부인,며느리. 손녀 3대가 한 집에 살고 있다. 그 부인은 91세 고령이고 며느리가 집안을 꾸려오다가 무름관절염으로 거동이 어렵게 되었다.

 

그러자 손녀가 간호사로 일하여 벌어 온 돈으로 근근히 생계를 이어왔다. 손녀가 병원에서 일하지 않는 비번 날 몆가지 물건을 팔면 돈을 벌 수 있다는 꾐에 빠져 사탄이 났다는 것이다. 그 손녀가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커피와 양주 등 특정외래품을 받아 팔다가 경찰에 구속된 것이다.

 

그 손녀 또한 폐결핵에 걸여 치료를 받지 않으면 안되는 상태였다. X레사진은 바로 그 손녀의 흉부 사진이었다. 선처를 비는 부의장 부인의 진정서를 읽으면서 나는 기사로 쓰던, 않쓰던 이 소녀를 도와주고 싶었다. 검사에게 그 소녀를 석방시켜 주라고 간청했다. 검사도 그 소녀의 범죄행위에 동정이 가는 듯 그렇게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그 검사는 다음 날 그 소녀늘 석방했다. 그 사건이 우리 신문에 보도되자 그 소녀를 치비로 쓰라며 한 독지가로 부터 거액이 기탁되었고 모 기에서 부의징 가족의 생계비를 지원하겠다는 제의가 들어 왔다. 또 그 검사는 "정 검사"가 되었다. 세상이 훈훈해지는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