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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과 인생/효석

봉은 2020. 9. 4. 18:06

요즈음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젊게 보이려고 온갖 노력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남정네까지 주름을 없애 주는 시술을 받기도 합니다.

한 살이라도, 어리게 보이는 것이 인기를 끌게 되면서 이른바, ‘童顔 신드롬’ 이란 현상이 유행병처럼 번지고 있습니다.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웬만한 시골 동네에서 오십 대만 되어도 뒷짐을 지고 어른 행세를 하던 광경들이 문득 생각납니다. 그때만 해도 어른스럽다는 것, 나이가 들었다는 것, 노숙하고 노련하다는 것은 사회로부터 인정받는 중요한 기준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러던 것이 오늘날 환갑 청년 시대가 도래하면서 어느덧 회갑연을 여는 것마저도 어색한 분위기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나이가 든다는 것, 아니 들어 보인다는 것은 남에게 인정받아서도, 본인이 인정해서도 안 되는 금기어가 된 셈이랄까요?

그러면 과연 사람이 자연스럽게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이 반드시 그렇게 부정적인 것일까요? 이런 관점에서 문득 술의 숙성 과정이 생각납니다. 세상에는 참으로 많은 술이 존재합니다.

이 수많은 술 중에 어느 것이 고급에 속하느냐를 따지는 기준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물론 그 술의 재료, 만드는 공정 등도 중요한 역할을 하겠지만 정답은 바로 숙성 과정에 있습니다. 말하자면 숙성과정을 거쳤느냐 아니냐, 또 숙성을 시켰으면, 그 방법과 기간이 어떠하냐에 따라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숙성 과정을 거치는 것으로 가장 유명한 술은 위스키와 코냑입니다. 이들 술은 나무통에서의 숙성을 통해 여타의 술과는 차원이 다른 최고급 술로서의 품격과 기품을 유지하게 됩니다.

술의 숙성 과정은 한마디로 술에 세월의 풍상을 겪게 하는 것입니다. 나무통 속에서 짧게는 수년, 길게는 수십 년 동안 생활하면서 처음에는 어리디 어린 술들이 세월을 보내면서 그 맛과 깊이를 더해가게 됩니다


이는 우리네 인생과 전혀 다를 것이 없습니다. 오래 숙성된 술은 인생의 본뜻을 이윽고 체득한 멋있는 중장년이나 원숙한 노인과 같은 셈이죠.

술의 경우 숙성시키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겪게 되는 ‘양이 줄어드는 현상’ 이 생기는 것이죠. 이를 한마디로 증발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또한 우리네 인생과 흡사합니다

 

나이가 들면서 술이 증발하듯이 우리 몸도 약해지고 늙어가게 마련입니다. 그것이 자연적 퇴행이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과정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오늘날 가장 높이 평가하는 술은 결국 오래된 술이 아닙니까?


마찬가지로 세월의 풍상 속에 그 육신은 약하고 오그라들었지만 그 안에 녹아있는 세월의 깊이야말로 격조있는 고급술의 가치이자 우리 인생의 진정한 멋일 것입니다.

 

효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