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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트 백태(百態)/효석

봉은 2020. 10. 10. 18:46

유대인 학살을 충격전으로 묘사한 영화 '쉰들러 리스트'는 2차대전 중 독일 점령하의 폴란드에서 독일 사업가 오스카 쉰들러가 학살의 위기에서 "돈을 주고 구해낸 유대인 명단이다. 전쟁을 틈타 일확천금을 하려던 쉰들러는 공짜 노동력이 탐나 수용소에 갇힌 유대인을 고용했다가 나치가 어린이까지 무참히 학살하는 장면을 목격하면서 유대인의 '구제주'로 돌변한다.

독일 장교에 뇌물을 주면서 아이들까지 위장 취업에서 살려내는 대목에서 쉰들러의 현실주의적 인간애는 절정에 이른다. 스필버그 감독의 역작인 이 영화가 상영되자 미국문화를 '깡통 문화'라고 멸시했던 프랑스까지 유럽 문화를 해치는 미국 문화의 기습이라고 찬탄했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서 익숙해진 리스트는 이러한 지고지선의 이야기와는 대조적인 부끄러운 사연을 담고 있다. 자유당 시절 댄스홀을 무대로 숱한 유부녀와 여대생을 농락한 '박인수 리스트'는 법정까지 비화되어 "법을 보호할 가치를 있는 정조만 보호한다"는 난센스 같은 유행어를 남겼다. 공화당 시절에는 콜걸의 고위층 단골 메뉴가 담긴 '정인숙' 리스트가 세상을 떠들석하게 만들었다.

몇년 전에는 광주시가 광주비엔날레를 코앞에 둔 상황에서 홍모 화백의 작품 ‘세월 오월’ 특별전을 불허하고, 문화예술위원회 예술인 지원 사업 선정 과정에서 두명의 연극 연출가가 석연치 않은 이유로 최종 선정에서 제외되자 문화계 블랙리스가 떠올랐다.

도종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블랙리스트의 존재가 적시된 문예위 문건을 공개했다. 청와대가 작성한 블랙리스트가 문화체육관광부를 통해 문화예술위와 예술경영지원센터에 전달됐다는 증언과 정황도 잇달아 나왔다.

 

2020년 10월 10일

최택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