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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 편가르기 끝내라/효석

봉은 2020. 10. 14. 20:31

조국·윤미향·추미애 사태 때마다
두 개의 나라로 갈라진 대한민국
양극화 심화, 견제·균형 원리 붕괴
소통·조율.. 정치 본역할 찾아야

대한민국이 두 개의 나라로 나뉘고 있다. ‘조국 사태’ 당시 광화문과 서초동에 모인 사람들은 상대를 적성국 국민 대하듯 했다. ‘윤미향 사태’, ‘추미애 사태’에서도 그랬다. 이런 갈등을 조율하고 사회를 통합시켜야 하는 정치는 오히려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 우리 사회의 양극화도 심해지고 있다. 대통령 권력이 커지면서 민주주의 운용의 골간인 입법·사법·행정부의 ‘견제와 균형’ 원리가 무너지고 있다.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 넘어서야 할 과제들이다. 세계일보는 지령 1만호를 계기로 전직 국회의장과 총리들에게 ‘대한민국 통합의 길’을 물었다.

◆국민 통합의 길

정의화 전 국회의장은 우리 사회의 분열 상태를 우려하면서 “경제, 외교, 안보 위기를 돌파해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무기는 국민통합”이라며 “정치권 등이 지금이라도 편가르기를 중단하고 공정하고 정의로운 길, 그리고 중용의 길로 가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정의화 前 국회의장

강창희 전 국회의장은 ‘경청의 리더십’이 국민 통합의 전제조건이라고 역설했다. 강 전 의장은 “모든 리더십의 기본은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는 데서 시작되는데 대통령을 포함한 여야 지도자들이 그걸 안 하고 숙고하지 않은 채 경박한 언어를 쏟아낸다”고 지적했다. ‘권력의 절제’와 ‘합리적 인사’도 당부했다. 그는 “최근 퇴임한 정명호 서울고검 검사도 퇴임식에서 ‘권세를 지녔다 해도 다 부리지 말라. 권세가 다하면 원수를 만나게 된다’(有勢莫使盡 勢盡寃相逢)는 명심보감 구절을 인용했는데 정말 그래야 한다”며 “문재인정부에서 ‘캠코더(캠프, 좌편향 코드, 더불어민주당) 인사’가 논란이 되고 있는데 건전한 상식에 입각해서 공평한 인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황식 전 총리는 통합을 위해선 개헌을 통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봤다. 김 전 총리는 “우리의 민주주의 역사가 일천해서 대화하고 타협하는 훈련이 부족한 점도 있지만 다수당만 되고 대통령만 되면 독단적으로 정치를 해나갈 수 있는 현행 제도가 대화와 타협을 막고 있다”면서 “독일의 선거제도는 한 정당이 독자적으로 정권을 담당하기 어렵게 돼 있어서 일상적으로 정당 간 대화와 타협이 이뤄진다”고 말했다.

김황식 前 국무총리

박관용 전 국회의장은 “민주주의 기본정신이 관용의 정신”이라며 “나를 비판한다고 해서 공격하거나 탄압을 하면 사태가 더 악화된다”고 말했다. 박 전 의장은 “권력이란 게 원래 인내심이 없는 것이기 때문에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인내심을 갖고 설득해야 하는데 그런 노력이 부족하다”며 “좀 더 부드러운 정책, 설득하는 정책, 설명을 해주는 정책으로 방향을 바꿔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국정치학회 회장을 지낸 양승함 전 연세대 명예교수는 “사회적 합의를 끌어낼 수 있는 시대정신과 그것에 따른 국가 비전과 철학이 없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그렇다 보니 진영논리에 입각해 자기 쪽만이 진실이다, 옳다고만 생각한다”고 진단했다.

김원기 前 국회의장

◆대통령·정치권에 대한 제언

김원기 전 국회의장은 “어느 정권이든 정치를 대권 중심으로 생각하다 보니 국회의원들이 헌법기관이라는 자부심에 손상을 입었는데 의원 개개인이 정치지도자이자 당당한 중심이라는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면서 “그런 토대 위에서 여야가 먼저 정치를 풀어가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전 의장은 특히 야당을 향해 “국회를 정치의 중심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절대 과반을 차지한 여당이 1차적 책임을 갖지만 야당도 열린 자세를 갖고 소극적인 자세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희태 前 국회의장

박희태 전 국회의장은 대통령과 정치권을 향해 “첫째도 대화이고 둘째도 대화”라고 주문했다. 박 전 의장은 “민주정치는 대화정치다. 여야뿐만 아니라 대통령과 야당 대표도 대화를 자주 해야 된다”면서 “야당도 청와대에 계속해서 대화하자 대통령을 만나겠다고 해야 하는데 그런 목소리가 별로 안 나오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박관용 전 의장은 “권력을 가진 사람이 비판하는 사람을 내치려고만 하는 것이 우리나라 정치인들의 잘못된 습관”이라며 “문재인 대통령부터 그런 습관을 내버려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너희는 내 권력을 뺏으려고 시비만 거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으니 정치가 안 된다”며 “비판하는 사람들 불러서 ‘당신이 하는 욕은 잘못된 거고, 고칠 건 내가 고치겠다’는 얘기를 왜 못하느냐”고 안타까워했다.

박관용 前 국회의장

정 전 의장은 “집권 여당은 과거 야당 시절 집권당에 요구했듯이 양보와 배려의 정신을 가지고 야당과 대화해야 한다”며 “대통령은 민주주의라는 외양을 쓴 포퓰리즘적, 전제주의적 발상은 버리고 진정한 자유민주주의를 향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양 전 교수는 “가장 중요한 건 관용의 정치”라며 “상대가 나를 반대해서 정권을 획득할 권력이 있음을 당연하다고 인정하는 정신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헌법기관 중립성을 위한 제언

강 전 의장은 “헌법기관 중립성 흔들리는 건 망조가 드는 것”이라고 걱정했다. 그는 “지금까지 정권이 바뀌어도 사법부는 크게 흔들리지 않았는데 ‘양승태 적폐’라고 대법원장까지 잡아넣으면서 난리가 났다”며 “정권은 항상 바뀌게 되어 있는데 다른 정부가 지금처럼 하면 말릴 수가 없다. 그만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강창희 前 국회의장

대법관 출신인 김 전 총리는 최근의 사법부 편향 논란에 대해 “법관들 생각도 다 다르고 제가 언급하는 건 적절치 않다”면서 “사실이든 아니든 많은 국민들이 불안해하고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자체가 바람직하지 않다. 국민의 사법부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는 모습이 보여져서는 안 되는데, 지금 그런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은 바람직한 상황은 아니다”고 우려했다. 그런 뒤 “우리 제도가 대법원장·대법관 임명 시 제청, 국회 동의, 대통령 임명으로 제도는 잘돼 있다”며 “제도 탓이라기보다는 당사자들이 권력분립과 사법권 독립정신에 입각해서 자기 직분을 충실히 담당해 주는 수밖에 없다”고 당부했다.

정 전 의장도 “이념적으로 치우친 인사에서 어떻게 중립성을 담보할 방안이 있을 수 있겠느냐”고 반문한 뒤 “대법관들과 헌법재판관들의 애국심과 법조인의 양식에 기댈 수밖에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라고 우려했다. 국회를 향해서도 “인격적으로 흠결이 있거나 이념적으로 치우친 인사를 막을 제도적 방법은 국회가 표결로 막는 방법밖에 없으니 당리당략이 아닌 소신투표를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양 전 교수는 “진보정권이 들어서면 진보적 인사가 권력을 장악하는 건 당연하다고 본다”면서도 “문제는 재판 과정에서 권력의 영향을 받느냐다. 뒤에서 거래하고 재판에 영향을 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검찰은 정부 기관이지만 사법기능을 하기 때문에 독립적이고 자율적으로 하기 위해 검찰총장 제도를 뒀다”며 “그런데 실질적으로 검찰총장은 권력의 시녀가 돼 왔다. 정의를 집행하는 기관이 아니라 권력을 집행하는 기관이 돼 왔다. 개혁의 포인트는 검찰 독립”이라고 말했다.

◆양극화 해소를 위한 제언

정 전 의장은 “양극화 완화를 위해서는 안정적 일자리를 통해 중산층이 두꺼워지도록 만들어야 한다”면서 “서민과 사회적 약자를 위해 맞춤형 복지와 함께 희망의 사다리를 만들어줘야 하고, 기업의 기를 살려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들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좋은 일자리는 정부가 아닌 기업만이 만들 수 있는 것”이라며 “지금처럼 경제민주화라는 미명 아래 기업을 마구 옥죄는 규제를 양산해서는 안 되고 사회안전망을 촘촘히 구축하면서 유연한 노동시장을 위해 기업, 노조, 정부 간 대타협을 이뤄내야 한다”고 조언했다.

강 전 의장은 “가진 자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가 필요하다”며 “미국이 자유주의 경제하면서 양극화 문제 생겨났지만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사회적 문제를 완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전 총리는 “성장과 분배, 자유와 평등의 문제도 어느 하나를 선택할 문제가 아니고 양자가 수레바퀴처럼 나아가야지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건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를 낳게 된다”고 말했다.

국회팀 janghj@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