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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 손님과 어머니/효석

봉은 2020. 10. 16. 18:08

주요섭의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는 순종과 억압의 폐쇄사회에서 저항과 자유의 개방사회로 가는 과도기적 인간상을 그리고 있다. 서정적이고 낭만적인 연정을 예술적으로 승화시켜 19030년대 한국소설 가운데 걸작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60년대 초의 시골을 배경으로 청상과부와 미술교사의 애틋한 사랑을 유치원에 다니는 어린아이의 일기식 독백을 통해 수채화처럼 담담하고 서정적으로 그려냈다.

여섯 살 옥희(전영선 )네 집은 큰집에서 사는 할머니를 포함하여 어머니와 식모가 모두 과부라서 과부집으로 불린다. 어느 날 외삼촌이 이 동네 중학교의 미술선생님을 데려와 옥희네 사랑방에 하숙을 하도록 하는데, 그 선생님은 옥희 아버지의 친구였다고 한다. 사랑방 손님과 옥희는 금방 친해진다.

결혼한 지 일 년도 안 되어 혼자가 된 어머니와 사랑방 손님은 처음 본 순간부터 사랑을 느끼지만, 서로 말 한마디 못하고 옥희를 통해서 대화를 하고 사랑을 키워간다.

그러던 중, 사랑방 손님과 함께 그림을 그리러 뒷동산에 올라간 옥희는 내려오는 길에 우연히 마주친 유치원 친구로부터 너희 아빠니?’ 하는 말을 듣는다.

옥희는 유치원에서 꺾어온 꽃가지들을 어머니에게 주면서 사랑방 손님이 엄마 갖다 주라고 했다며 거짓말을 한다. 어머니는 설레는 마음을 가누지 못해 피아노 위에 있던 아버지의 사진을 치우고, 그 자리에 그 꽃을 꽂은 꽃병을 올려놓는다. 그리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처음으로 피아노 앞에 앉아서 피아노를 친다.

어느 날, 옥희의 외삼촌이 찾아와 어머니에게 재가를 권하고, 할머니에게도 그 뜻을 전하는데 할머니는 매우 섭섭해 하지만 결국 어머니의 재가를 허락한다.

그러던 중 사랑방 손님의 여동생이 찾아와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전하고, 사랑방 손님은 서울로 떠날 채비를 한다.

그날 저녁, 사랑방 손님은 옥희를 통해서 사랑을 고백하는 편지를 어머니에게 보내는데, 어머니는 고심하다가 예쁘게 차려 입힌 옥희 편에 거절의 답신을 보낸다.

어머니는 피아노 앞에 앉아 쇼팽의 즉흥환상곡을 치며 아픈 마음을 다잡는데, 밤늦게 술에 취해서 들어온 사랑방 손님은 물그릇을 들고 서있는 어머니를 뜨겁게 포옹한다.

다음날, 옥희와 어머니가 뒷동산에 올라 사랑방 손님이 탄 기차가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멀어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줄거리다.

한 울타리 안에 사는 젊은 남녀가 서로 말 한 마디 못하고 옥희를 통해서 소통하는 모습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또 사랑방 손님으로부터 사랑고백을 받은 28살의 어머니가 방바닥에 엎드려서 선생님, 메마른 나무에 불을 지르지 마세요. 제게는 옥희가 있을 뿐입니다.’ 하고 답장을 쓰는 모습은 참으로 애처롭다.

옥희의 적극적인 동의와 할머니의 허락까지 받은 어머니와 사랑방 손님은 결국 이별을 한다. 물론 사랑방 손님이 떠나면서 옥희에게 다시 올 거라고 했으니 재회의 여지는 남겨둔 셈이지만.

이 작품의 또 다른 가치는 60년대의 풍광이 화면에 오롯이 담겨져 있다는 점이다. 아낙네들이 우물가에서 뒷담화를 하는 모습, 계란장수가 등짐을 지고 돌아다니며 약병아리와 계란을 파는 모습, 사주쟁이가 길가에 앉아서 사주를 봐주는 모습 등이 그러하다.

순종과 억압이라는 기존 윤리와 본능적 사랑 사이의 갈등. 애정과 기존 인습 사이의 갈등으로 고민하는 주인공의 마음에는 사랑이 도도하게 흐르고 있다.

 

2020년 10월 17일

최택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