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넘게 지속돼 온 ‘재계(財界)는 문재인 정부에 의해 붕괴’되었다. 1961년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전신(前身)인 ‘한국경제인협회’ 창립 후 우리나라에선 대기업 오너가 회장을, 전문 경영인이 상근부회장을 맡아 ‘재계’라는 모임과 창구가 기능해 왔다.
구러나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 후 ‘대기업 때리기’와 연이은 ‘대기업 총수들 구속’ 광풍(狂風)은 한국 재계의 구심점을 정조준하며 풍비박산 냈다.
여기에다 문 정부는 이병철·정주영 회장 등이 주도해 만든 전경련을 5년 내내 유령단체 취급했다. 그 결과 ‘재계 실종(失踪)’ 사태는 심화했고 파장은 광범위했다.
2022년 3월 말, 한국 경제계에는 중심 인물이나 공동의 목표가 없다. 추풍낙엽처럼 뿔뿥이 흩어져 기업의 생존과 이익, 오너 대주주 일가(一家)의 안전을 알아서 도모하는 ‘각자도생’(各自圖生)의 모습 딱 그대로이다.
이런 현 주소를 재확인시키는 ‘일’이 이번 주초 추가됐다.
경제단체 6곳 중 유일하게 민간인 출신 상근부회장을 둬 온 한국중견기업연합회(약칭 중견련)가 관료 출신으로 ‘물갈이’한 것이다. 이달 21일부터 서울 마포구 대흥동 중견련 상근부회장실로는 박일준 전 산업통상자원부 산업정책실장이 출근하고 있다.
그의 중견련 입성은 정부의 압력이나 요청 때문이 아니었다. 경제단체의 한 고위 임원은 “최진식 신임 중견련 회장이 사재(私財)를 들여 전임 부회장이 받던 연봉의 두 배를 약속하고 부회장으로 영입했다”고 말했다.
중견련의 ‘정부 인사’ 낙점으로 우리나라 6개 경제단체는 퇴직 공무원들이 상근부회장을 모두 꿰차게 됐다. 군사 정권시대에도 경험 못한 ‘정부의 직할(直轄) 관리’ 시대가 기업인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열린 것이다.
“이런 모습이 자유시장경제를 표방하는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에 걸맞나?”라는 문제제기 마저 없다. 정치권과 정부가 경제를 압도하는 ‘정치 만능’ 시대에 질문 조차 사치(奢侈)로 여겨지는 탓이다.
문재인 정부 5년간 검찰 수사 같은 혹독한 외풍(外風)에 시달린 탓이 크지만, 현재 우리나라 오너 기업인들은 어느 때보다 외부와의 연줄과 로비로 청탁하며 문제를 해결하려는 후진적 사고방식에 사로잡혀 있다.
이런 흐름은 디지털 혁명과 혁신 기업 등장으로 민간의 자유·창의·자율이 중시되는 21세기 시대 흐름을 정면으로 거스를 수 있을까? ,
최택만 전 서울신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