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한(後漢) 말엽, 유비(劉備)는 관우(關羽), 장비(張飛)와 의형제를 맺고 한실(漢室)의 부흥을 위해 군사를 일으켰다.
하지만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잡지 못하고 여기저기 전전하며 세월을 허송하다가 마지막에는 형주자사 유표(劉表)에게 몸을 맡기는 신세가 되었다.
유능한 참모의 필요성을 절감한 유비는 여러 사람들을 통해 남양(南陽)에 은거하는 제갈량(諸葛亮)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관우, 장비와 함께 예물을 싣고 양양(襄陽)에 있는 그의 초가집을 세 번이나 방문한 끝에 그를 군사(軍師)로 모실 수가 있었다.
이때 제갈량은 27세, 유비는 47세였다.
이렇게 유비가 제갈량을 세 번 방문한 것을 이르러 ‘삼고초려(三顧草廬)’, 혹은 ‘삼고모려(三顧茅廬)’라고 한다.
실제로 이 말은 제갈량이 첫 번째 북벌(北伐)을 나서기 전, 후주 유선(劉禪)에게 바친 〈출사표(出師表) 에서 찾아볼 수 있다.
유비가 세상을 뜬 뒤 북별에 나선 제갈량이 새 황제 유선(劉禪)에게 올린 출사표(出師表)에 "돌아가신 황제께서 제 미천함을 따지지 않지지 않으시고 삼고초려를 하셨다고 유비에 대해 회고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실정은 과연 어떤가? 대통령이 국가와 국민을 위해 삼고초려할 인물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당 대표나 고위직에 있는 인사들이 이 방송국 저 방송국을 찾아 다니며 자기 PR이나 하고 있지 않은가.
국민의 힘은 대표가 성상납문제로 날이새고 더불어민주당은 대표 선출 등 코앞의 문제로 허송세월하고 있으니 참 가관이다.
대내외적인 요인으로 국민은 민생고로 허덕이고 있는데....
2022년 7월 1일
최택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