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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기행 / 한용운- 님의 침묵

봉은 2019. 8. 2. 17:07

문학 기행/ 한용운 - 님의 침묵


님의 침묵(沈默)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黃金)의 꽃같이 굳고 빛나든 옛 맹서(盟誓)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微風)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追憶)은 나의 운명(運命)의 지침(指針)을 돌려 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源泉)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希望)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沈默)을 휩싸고 돕니다"


이 시는 ‘님은 갔습니다.’ 라고 하여 임과의 이별을 확인하는 말로 시작된다. 사랑하는 ‘님’과의 이별로 인한 슬픔과 괴로움을 묘사하다가, ‘그러나’ 라는 접속어에 의해 시적 상황이 급전하게 된다.


즉, 화자의 정서가 이별의 ‘슬픔’에서 ‘희망’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여기서 슬픔을 희망으로 역전시킬 수 있는 힘은 삶에 있어서의 만남과 헤어짐의 실상을 깊이 있게 깨닫는 데서 비롯되고 있다.    


한용운의 ‘임’과 김소월의 ‘임’ 비교  

          

소월의 시에 나타나는 임은 죽었거나 아주 멀리 가서 돌아올 가망이 없는 사람이다. 그의 시가 대체로 애절한 슬픔과 한의 정조를 담고 있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아무리 기다려도 사랑하는 임은 다시 돌아올 가능성이 없다고 느낄 때, 그 기약 없는 기다림이 절망적인 비탄으로 옮겨 가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만해의 시에서 임은 비록 지금 여기에 있지 않다 하더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다시 돌아올 것이다. 또 돌아오지 않을 수 없는 존재이다. 임과의 재회를 믿기 때문에 그의 시는 절망에만 빠져 있지 않ek.


결국은 이별의 슬픔을 극복하고 희망으로 전환된다. 이런 차이의 가장 중요한 요인은 두 시인이 현실과 역사를 보는 시각과 의식이 달랐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의 호는 만해(萬海). 충남 홍성 출생. 1918년 불교 잡지 “유심(愉心)”에 시 ‘심(心)’을 발표하여 문단에 등단하였다. 불교 사상을 바탕으로 철학적 사색과 신비적 명상 세계를 형상화한 철학적 · 종교적 연가풍의 시를 주로 썼다.


시집 “님의 침묵”(1926) 외에 “조선 불교 유신론”, “불교 대전” 등의 저서를 남겼다.


2019년 8월 2일

최택만 전 서울신문 논설고문,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