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리의 역마살
역마살의 줄거리는 화개장터에서 주막을 운영하며 살고 있는, 마음 착하고 인심 좋은 옥화는 아들 성기의 타고난 역마살을 없애기 위해 노력한다. 어느 날, 체장수 영감이 딸 계연을 데리고 와 옥화네 주막에 맡기고 떠난다. 옥화는 계연을 성기와 맺어 주어 성기가 역마살을 극복하고 정착하기를 바란다.
어느 날, 옥화는 계연의 왼쪽 귓바퀴 위에 난 사마귀를 발견하고 자신의 동생이 아닐까 의심한다.
체 장수 영감이 돌아와 들려준 이야기에 의해 계연이 옥화의 이복 동생임이 밝혀지고, 계연과 성기는 이별하게 된다. 계연은 아버지를 따라 고향으로 떠나고 성기는 병을 앓는다. 이후 성기는 엿판을 걸고 화개장터를 떠난다.
1930년대 문단에 등단한 그는, 해방 정국의 정치적 격변기에도 사상 따위에 초연하며 순수 문학을 통한 인간성 탐구라는 작가 의식에 투철하였다.
해방 이후에 발표한 이 작품은, 한국적 자연과 함께 주어진 운명에 순응함으로써 인간 구원(久遠)을 획득하는 한국적인 인간의 모습을 진지하게 탐구하고있다.
한국적 운명관인 '역마살'에의 순응을 통한 인간 구원(久遠)을 주제로 하는 이 작품에는, 운명에 패배하는 인간의 모습이 아니라 오히려 그에 순응함으로써 인간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작가의 문학관이 짙게 깔려 있다.
사실성을 중시하는 소설관(小說觀)에서 본다면, 이 작품은 우연성이 너무 강조되고 있다. 하루 저녁 인연을 맺은 남사당(체장수)에게서 옥화를 낳은 할머니, 떠돌이 중으로부터 성기를 낳게 된 옥화, 끝내 유랑의 길을 떠나는 성기 등 삼대에 걸친 '역마살'의 내력이나, 옥화와 계연의 만남, 옥화가 계연의 이복 동생임을 알게 되는 계기 등 주요 사건들이 우연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러한 우연들은 작가의 소설에서는 단순한 우연에 그치지 않고 운명의 지위로 격상(格上)한다. 이 작품에서 등장 인물들의 삶은 자신의 의지나 선택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 그들의 삶은 이미 운명적으로 주어져 있어서, 발버둥쳐도 벗어날 수 없는 숙명(宿命)인 보고 것으로 보고 있다.
채념의 문학관이다. 우연 인연 필연(숙명)으로 이어지는 이 작품을 보면서 인간의 삶을 지나치게 도식화 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장소 화개(花開)장터는 즉 개화(開花)는 애정의 무르익음을 뜻한다. 등장 인물들의 인연과 사랑이 맺어지는 장소로 '화개장터'를 설정하여 작품의 내용을 암시한다. 그리고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오고가는 곳으로, 전통 사회에서 떠돌이 삶을 상징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2019년 8월
최택만 전 서울신문 논설고문,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