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러브레터
'사랑, 듣기만 해도 가슴이 뛴다. 사랑은 죽음처럼 강한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러브레터는 최고의 보물이자 인생의 숭고한 절차 중 하나라고 한다. 러브레터의 상대는 나이가 들면서 연인에서 소중한 사람으로 바뀌는 속성이 있다고 한다.
내가 러브레터를 처음 쓴 것은 고교 2년 때이다 학교를 갈 때면 거의 같은 시간에 반대 편에서 오는 한 여학생이 편지를 받은 주인공이다. 편지 내용은 "그대를 사랑해요 그 이유를 말하라하면 가지수가 너무 많아 지구를 한 바뀌 돌고도 남을 거예요"
" 그대에 대한 나의 사랑을 말이나 글로 표현하라 하면 그 말을 다하기도 전에 내 목은 쉬고 그 글을 다 쓰기도 전에 손가락이 곱고 말 거예요"라고 쓴 것으로 기억된다
나는 "사랑한다"고 쓰고 나면 머리가 꽉 막혀 더 이상 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이유를 다 말할수 없고 글로 쓸 수가 없다는 엉뚱한 핑게를 늘어 놓았다.
내가 그 학생에게 러브레터를 주었으나 답장이 없어 아침 등교 길에 길을 막고 대담하게 물었다 "왜 답장을 주지 않느냐"고... ..
그 학생의 대답은 냉정했다.
"할 말도 없고 쓸 필요도 없서서 답장을 하지 않는다" 고 강한 어조로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리가 띵하면서 현기증이 일어났다. 그래서 길을 비켜주고 말았다.
내가 자꾸 길을 막자 그 여학생은 "내일 답장을 주겠다"고 했다. 그 다음 날 설레이는 마음 한편에는 불안한 마음으로 발거름을 재촉했다. 멀리서 그 학생이 보였다. 그는 내 앞까지 와서 봉투를 건내 주고 휑하니 가벼렸다.
나는 골목길로 비호같이 뛰어가 편지를 열어 보니 " 노(no)라는 글자만 한 페이지를 써 놓았다. 사랑한다는 말을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시귈 수 없는 변명은 몇줄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첫 러브레터는 '완전 KO'로 막을 내렸다.
러브레터를 가장 잛고 길게 쓴 사람은 프랑스 화가 마르셀 레쿠루르이다. 1875년 레쿠루르는 애인인 마드렌에게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흔해 빠진 말을 180만 5000번이나 되풀이해 썻다고 한다.
이 숫자는 그해의 연호에다 1000을 곱한 것이고 대서인이 쓴 것이다. 이 말을 180만 5000번 써달라고 부탁한 게 아니라 레쿠루르가 한마디씩 입으로 말한 것을 대서인이 그때그때 받아 적은 것이라고 한다.
지금 생각하니 그 학생은 레쿠루르와는 정반대의 글이자만 동일한 숫법으로 쓴 것이다. 만약 내가 레쿠루르처럼 많은 시간과 노력을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이 한가지가 궁금하다.
또 러브레터 상대를 연인에서 소중한 사람으로 바꿔 한 번 써 보고 싶은 충동을 간혹 느낀다. 사랑은 우리들 삶의 가장 정갈하고 소롯한 정수이 때문이다.
"사랑은 결코 그 자체가 완성되는 끝이 아니고 새롭고 더 큰 사랑을 향한 시작이며 출발점일 따름이다"
효석 최택만 전 서울신문 논설고문